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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국회보] FTA, 실적 아닌 조건이 중요

  • 관리자
  • 조회 : 3705
  • 등록일 : 2009-08-18
국회보 8월 <경제톡톡>
 

FTA, 실적 아닌 조건이 중요

 
 
"도대체 타결이 된 것인가, 안 된 것인가?"
 
지난 7월 중순, 한국과 유럽연합(EU)간의 자유무역협정(FTA)를 둘러싸고 시끌벅적한 논란이 벌어졌다. 라인펠트 스웨덴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한-EU 협상이 타결됐다"고 "선언"을 한 반면, 라인펠트 총리는 "EU 회원국들이 더 검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유보적인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우리 정부 관리들은 "사실상 타결"을 강조했고, 유럽 쪽에서는 "일부 회원국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어 어찌될지 모른다"는 취지의 보도가 이어졌다.
비슷한 일은 바로 그 직전에도 있었다. 이 대통령이 스웨덴 굴지의 통신장비회사 에릭슨의 회장을 만난 후 청와대가 "에릭슨이 한국에 15억 달러의 신규투자를 하기로 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를 한 것이다. 그런데 에릭슨은 "투자규모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부인해 우리 측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이 국제적인 망신은 대통령의 유럽 방문을 "광"나게 하기 위해 실무진이 과욕을 부리다 자초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EU FTA의 경우도 전후 맥락을 볼 때 아직 추가 논의의 여지가 남은 상태에서, "정상회담 발표용"으로 서둘러 타결 선언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이런 소동은 정부가 "실적주의" 혹은 "성과제일주의"에 매달릴 때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사실 정부의 실적주의가 낳은 대표적인 비극으로는 1996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과 그 이듬해의 외환위기를 꼽을 수 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내에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하는 것을 역사적 치적으로 삼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OECD 가입 조건으로 선진국들이 내세운 대대적인 금융시장개방 등의 무리한 요구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 일부 민간 연구소들은 "감독체제도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지나친 금융 개방을 하게 되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가입한 직후 외환위기를 맞았던 멕시코 짝이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진국의 제도와 관행을 받아들이면 경제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는 논리로 시장 개방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 아는 것처럼 이듬해에 닥친 지독한 외환위기였다. 외환위기는 빚에 의존한 재벌의 방만한 경영 등 우리 내부의 모순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성급한 시장 개방이 촉매가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영삼 정부가 OECD 가입을 역사적 과업으로 생각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동시 다발적인 FTA체결"에 승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FTA드라이브"는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시작됐다. 2007년 타결된 한미 FTA 협상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그 열기가 최근 들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유럽과의 협상에 이어 인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수 많은 나라들과 FTA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이렇게 동시다발적인 FTA에 주력하는 "명분"은 한미FTA체결 당시 대대적으로 방영되었던 홍보 동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FTA는 "양날의 칼"

"개척자 광개토대왕처럼... 해상왕 장보고처럼... 우리 민족에겐 뜨거운 도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시장을 향한 우리의 끝없는 도전,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우리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새로운 기회입니다. 대한민국의 자부심으로 세계와 경쟁합니다."
FTA를 통해 드넓은 세계 시장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우리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TV광고는 펄럭이는 깃발과 함께 광야를 달리는 일단의 기마병 군단을 보여준다. 말발굽 소리도 요란하게 그들은 아시아를 가로질러, 태평양을 가로질러 미국 대륙으로 전진한다. 그들과 함께 달리는 한국산 자동차와 초대형 선박... 바침내 정상에 오른 기마 대장은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린다.
이 논리대로라면 이제 미국에 이어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인 EU와의 FTA까지 맺게 됐으니, 우리는 엄청난 도약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 된다. 두 협정이 모두 해당국 의회의 비준까지 얻는 데 성공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FTA가 "양날의 칼"이라는 것을 무시한 일방적 "판타지"에 불과하다.
 
 
내수 중심의 중소 기업과 농축산 어업 등 애로 겪을 듯

자유 무역협정이라는 것은 영어로 "Free Trade Agreement"라고 하는데, 두 나라 간에 무역 장벽을 없애고 상품과 서비스 교역이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하자는 약속이다. 이 FTA가 발표되면 5천만 인구의 국내 시장을 상대하던 우리 기업들이 3억 인구의 미국 시장, 5억 인구의 EU시장까지 "안마당"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FTA지지자들의 주장이다.
FTA가 발표되기 전에도 이미 이들 나라와 통상을 하고 있었으니, 닫혀 있던 시장이 처음 열리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여기에는 과장이 섞여 있다. 그러나 FTA를 하면 교역 조건이 더 좋아지는 것은 분명하니 아주 근거없는 주장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국 시장이 우리에게 활짝 열리는 것과 함께 우리 시장도 그들에게 열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 중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은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 기회를 갖지만, 경쟁력이 낮은 국내 기업들, 예를 들어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과 농축산어업등은 쟁쟁한 외국 기업들의 공세에 밀려 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분야별로 짚어보자. 미국과 유럽 대상 FTA의 경우에는 자동차, 전자, 조선, 섬유 등의 수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농축산물과 의약품, 영화 음악 등 지적재산권이 관련되는 분야, 그리고 금융 법률 환경 등 서비스 분야에서는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한국 시장 개방의 혜택을 만끽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값싼 미국산 곡물과 축산물 과일, 유럽산 돼지고기 닭고기 낙농제품 등이 밀려들 경우 우리 농업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금융의 경우 미국과 유럽이 앞서있는 파생상품 거래가 대폭 허용되기 때문에 이들이 돈 벌 기회가 늘어난 반면 국내 시장의 안정성은 위협 받을 가능성이 있다. 파생상품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흉 중 하나다. 이런 가능성들을 다 고려한 후에도 과연 FTA가 우리 기업들을 "정복자"로 만들고, 우리 경제에 도약의 기회를 주는 "마법의 손"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멕시코를 보자. 미국과의 FTA체결 이후 경제가 활기를 띠는가 싶었으나, 농업이 붕괴되고, 빈부격차가 훨씬 더 심해지고,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다 국경 부근 사막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 수가 더욱 늘어났다. 90년대 중반 이후 "동시 다발 FTA"를 추구해왔던 멕시코는 2000년대 들어 FTA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졌다. 폐해가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FTA의 또 다른 장점은 국내 소비자들이 누릴 혜택이다.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줄거나 없어지기 때문에 외국산 자동차와 전자제품, 농축산물, 각종 명품소비재 등을 종전보다 훨씬 싼 값에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반론이 있다. 예컨데 외국산 먹거리 가격이 싸지는 것은 좋지만, 이 때문에 국내 농가들이 경쟁력을 잃고 퇴출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는 것이다.
수천, 수만 킬로미터 밖에서 수송되어 온 외국산 먹거리가 우리 식탁을 차지하게 됐을 때, 과연 국민들의 건강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쇠고기의 광우병 논란은 차치 하고라도, 수확과 보관, 수송 과정에서 엄청나게 살포되는 항생제, 방충제 등의 부작용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조작식품(GMO)의 문제는 어쩔 것인가.
 
 
국내 경제 부문 튼튼히 하는 게 급선무

동시다발적인 FTA는 무역관계를 너무 복잡하게 만들 위험성도 안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석학 자그디시 바그와티 교수는 "스파게티 볼(Spagetti Bowl)"이론을 통해 이를 경고했다. 한 나라가 여러 나라와 FTA를 맺을 경우 스파게티 국수 가락들이 엉키는 것처럼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 경영과 세관 업무 등에서 각각의 FTA에 맞는 기준과 조건을 관리하느라 엄청난 비용이 들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FTA로 인한 효용보다 이런 관리 비용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세계무역기구(WTO)가 주도하는 "도하라운드"같은 다자간 협상, 즉 전세계 국가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회담을 통해 무역장벽을 낮춰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FTA에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FTA는 "얼마나 많이 체결했나"하는 실적이 아니라 "어떤 조건인가"가 중요하다. 시장 통합의 이익을 높이고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낮추면서 FTA를 할 수 있다면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체결되고 있는 선진국들과의 FTA는 이런 면에서 미심쩍고 걱정스런 부분들이 많다.
특히 한미 FTA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 정부의 정책에 대해 시비를 걸 수 있는 "투자자국가제소제(ISD)"가 도입돼 국내법 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정부가 협상의 내용을 꼼꼼히 따지기보다 타결 실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우리 국민들의 이익이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지 의심이 커진다.
정부가 추진하는 동시다발적 FTA는 안 그래도 너무나 대외의존적인 우리 경제 구조를 외부의 변화에 더욱 휘둘리게 만들 가능성도 높인다. 우리에게는 국내 경제 부문, 즉 내수를 튼튼히 하는 일이 시급한데 FTA이후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입고 실직자가 늘어나면 내수가 더욱 취약해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정부의 "FTA 드라이브"는 재고되어야 한다. "더 많은 FTA 체결"이라는 "실적"대신 "국민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경제"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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