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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위기로 충격에 빠졌던 세계경제가 요즘 돌아가는 모습이 "옐로카드를 받고도 반칙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축구선수와 비슷하다. 잠시 정신을 차리나 했더니, 형편이 좀 나아지자 예전 버릇으로 되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신청 이후 폭락했던 각국 증시는 1년여 만에 위기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고,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분석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러자 위기의 주범으로 찍혀 꼬리를 바짝 내렸던 선진국 대형 금융회사들이 지나친 위험 추구 행위와 경영진의 과도한 보수를 규제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본격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내 놓은 금융규제강화안은 월스트리트의 로비를 받은 정치인들의 비협조로 심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체불명의 신종파생상품들이 세계 경제를 그렇게 뒤흔들어 놓았는데도, 금융회사들은 또다시 고위험의 새로운 증권들을 만들고 거래한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사이먼 존슨교수 등 비판적 학자들은 "또 다른 위기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비교적 빨리 위기에서 벗어난 듯 보이는 것은 각국이 엄청난 돈을 퍼부어 금융회사들을 구제하고, 경기를 부양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피투성이로 실려 온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진통제와 영양수액을 듬뿍 투여해서 숨 쉴 만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환자가 아직 다 나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본격적인 수술과 치료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통증이 줄었다고 해서 다시 술과 담배를 입에 댔다간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배은망덕한 환자와 그 가족들이 치료하려는 의료진에게 슬슬 대들고 있는 게 지금 선진국 금융권의 모습이다.
눈을 나라 안으로 돌려보자.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정부가 엄청나게 돈을 풀고 온갖 비상조치를 통해 금융회사와 기업들을 살려 준 덕에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풀린 돈이 증시와 부동산 시장을 너무 밀어 올리는 바람에, 어떻게 경제에 충격을 덜 주고 이를 다시 흡수할 것인가 하는 "출구전략"이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깎인 채 전세대란과 식료품 값 과외비 상승에 시달리는 "윗목" 서민들에게 "경제 회복"은 남의 나라 얘기다. 서민들 살림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취약성도 나아지지 않았다. 리먼 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나라가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할 만큼 충격을 받았던 것은 단기외채를 너무 많이 쓰고 있는 은행들, 외국인 비중이 너무 높은 외환시장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수출입에 기대는 대외 의존형 경제구조, 수출대기업과 내수중소기업의 연계가 깨진 산업현장 등 외부의 충격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약점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수술하기보다 4대 강 개발, 그린벨트에 아파트 짓기 등 부동산 거품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단기 처방에 매달리고 있다. 금융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할 마당에 재벌에게 은행 소유권을 주는 등 위험성을 오히려 높이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내수를 튼튼히 하기 위해 필요한 중소기업, 자영업, 임금근로자 등을 위한 정책은 닳고 닳은 구호 외에 딱히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글로벌 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될까? 회생 불능의 "레드카드"를 덜컥 보게 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