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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MBC경제매거진]기축통화 전쟁
- 제정임
- 조회 : 5075
- 등록일 : 2009-11-06
이 보도로 달러 값이 폭락하고 금값이 치솟는 등 엄청난 파문이 일자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 등 관련국들은 일단 ‘그런 일이 없다’고 발을 뺐다. 그러나 피스크 기자가 평소 이 분야에서 신뢰를 쌓아 온 베테랑인데다, ‘그런 일이 있을만하다’는 전문가들의 관측이 작용해 기사의 여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선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미국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달러가치가 계속 떨어져, 산유국들이 석유대금을 달러로 받으면 손해라는 이유가 있다. 또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이스라엘을 싸고도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아랍국가들, 중동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는 중국의 이해가 맞물려 ‘석유 결제에서 달러를 배제한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이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도전하는 움직임은 이미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중국이 총대를 메고 나서서 “달러 대신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기축통화로 활용하자”고 제안해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을 더욱 당혹스럽게 한 것은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이른바 ‘브릭스(BRICs)"의 신흥대국들이 중국을 지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이 이 같은 움직임에 강력히 저항하고 유럽도 미국편을 들어 더 이상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디펜던트의 보도대로라면, 석유결제대금 교체 논의를 시작으로 기축통화 변경 움직임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기축통화교체가 급격히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수조달러의 미국 국채를 갖고 있는 중국과 중동국가들 입장에서도 달러가치가 갑자기 추락하면 큰 손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기본적인 계산이 있는데다, 당장은 달러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자기네 기업들의 수출에 유리하기 때문에 별다른 방어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각국이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서서히 줄이고 유로화 비중을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석유결제통화 교체’가 현실화되면 ‘달러 붕괴’에 준하는 충격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쑹훙빙이 쓴 ‘화폐전쟁’을 보면 세계경제의 가장 강력한 성장 엔진으로 부상한 중국이 기축통화국의 지위에 도전하면서 궁극적으로 미국의 리더십을 뺏고자 하는 야심이 드러난다. 세계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미국의 곤경은 감춰두었던 중국의 야심에 불을 당겼다고 볼 수 있다. 이미 ‘G2(주요2개국)’니, ‘차이메리카’니 하는 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중심권에 부상한 중국의 행보는 세계 경제의 판도는 물론 우리의 운명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국을 더 심도 있게 연구하고 예측하고 대비하는 국가적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