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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한겨레] 안보와 정신까지 손상시킨 미국식 전쟁보도 맞서야

  • 관리자
  • 조회 : 5285
  • 등록일 : 2009-11-26
 
[시민편집인의눈] ‘안보’와 정신까지 손상시킨 미국식 전쟁보도 맞서야 / 이봉수
미국 반전여론 일으킨 영국언론 교훈 삼았으면
당국 발표만 의존하면 ‘진실도 전쟁의 희생자’
‘안보담론’에 매몰 안되고 ‘평화담론’ 선도해야
한겨레
»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우리는 우리(나라)의 명예와 힘과 안전뿐 아니라 정신까지 손상시킬 점령에 들어갔다.” <뉴욕 타임스> 기자였던 크리스 헤지스는 2003년 이라크 전쟁 관련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 강연장에서 쫓겨나고 회사까지 그만둬야 했다. 당시에는 매국노나 할 수 있는 발언으로 치부됐지만 그는 이후에도 ‘잘못된 전쟁’에 대한 책을 여섯 권이나 썼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관련 보도에서 가장 탁월했던 언론인 셋을 꼽으라 한다면, 지금은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에서 일하는 헤지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로버트 피스크, 그리고 <비비시>(BBC)의 존 심슨을 꼽겠다.

피스크는 원래 <더 타임스> 기자였는데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그 신문을 인수하자 <인디펜던트>로 옮긴 인물이다. 그는 33년간 중동에 주재하면서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보도와 논평을 쏟아냈다. 그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세계 각국 기자들이 안전지대에 머물면서 전쟁의 참상과 진실을 외면하자 ‘호텔 저널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저널리즘은 정부와 정치인이 국민을 전쟁으로 몰고 갈 때 모든 권력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목되는 점은 전쟁이라는 격동기에 그것을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언론사의 위상도 크게 바뀐다는 사실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라크전을 지지하는 애국주의 논조를 펴다가 상당히 권위가 손상됐다. 엠아이티(MIT)대학의 터먼 교수는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를 ‘미국이 세계를 망치는 100가지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권위 있는 종군기자까지 몰아내는 언론사 분위기는 결국 그 매체의 권위마저 몰아내게 된다. 미국에서 반전 여론을 소생시킨 주역은 미국 언론이 아니라 영국 언론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우리 언론의 전쟁 보도는 어떤가? <한겨레> 서해교전 보도를 예로 들면, 승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3단계로 단순해진 교전규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11월11일 3면) 등 나름대로 전쟁보도의 금도를 지켰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서부터 서해교전과 아프간 파병 관련 보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언론의 태도에는 숱한 문제점이 발견된다. <한겨레>에도 해당 사항이 적지 않아 전쟁 보도와 관련한 외국 사례와 몇 가지 화두를 던져본다.

첫째, 대부분 언론사가 아프간이든 서해 섬이든 현장에 기자를 보내지 않고, 정부나 군당국의 발표 또는 외신에 전적으로 의존해 보도하는 태도가 관행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전은 종군기자가 많이 숨진 전쟁으로도 유명했으나 우리는 3위 파병국이면서 손끝 하나 다친 기자가 없다. 어떤 종류의 전장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들어갔던 민간인과 지원병만 희생됐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라크전 개전 초기 기자를 특파했으나, 미군의 ‘임베드(embed)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우이다. 이는 군인들과 숙식을 함께하는 것이어서 미군의 눈으로 전쟁을 보게 되는 문제가 있다. 헤지스는 “임베딩은 기자들에게 전쟁은 고귀한 작전이라는 신화를 주입한다”고 했다.

<비비시>의 존 심슨은 임베딩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취재하다가 미공군의 오폭으로 취재차가 불길에 휩싸이는 위기에 처했다. 그는 차에서 뛰쳐나와 부상을 입은 채 바로 리포트를 하는 기자정신을 보여주었다. 심슨은 세계 분쟁지역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는 65살의 노인이고 세계문제 에디터다.

특파원을 보내기 어렵다면 프리랜서를 활용하거나 현지인을 통신원으로 고용해 독자적 취재망을 갖출 수도 있으리라. 서해교전도 사건 직후 현지에 기자를 파견했더라면 발표에만 매달리지 않고 더 진실에 가까운 보도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해군장교로 백령도 등에 근무할 때 얘기지만, 섬의 해군기지들은 민간인과 포구를 함께 쓰는 곳이 많아 군에서 일어나는 일은 주민들도 대개 알고 있다. 해상의 교전상황도 어민이 목격하는 경우가 있어 금세 소문이 퍼진다. 당시 초급장교의 상상 속 그림이었지만 ‘남북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해 일촉즉발의 전쟁 위험도 해소하고 어민들이 마음 놓고 조업하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둘째, 한국 언론은 국내 정보원에 의존하는 보도를 많이 하는데 외국 정보원을 인용하더라도 미국에 편향된다는 점이다. 이라크전 초기 <한겨레> 기사에 인용된 정보원의 비율은 미국과 영국이 아랍국의 5배나 됐는데 그 비율은 <조선일보>와 동일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 언론의 취재 방식과 선정주의는 전쟁 보도가 군당국이 발표하는 전황이나 무기 성능 소개에 치우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외과수술식 정밀폭격’ 등의 제목을 붙인 컴퓨터그래픽은 전쟁을 오락실의 게임처럼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참혹한 폭격현장을 묘사한 르포기사나 감추어진 전쟁의 목적을 파헤치는 분석기사는 드물다.

셋째, 우리 언론의 이런 ‘직무유기’가 아프간 재파병 논란으로 연장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아프간 재파병은 언론이 안이하게 만들어낸 가상현실기초로 한 것이어서 많은 피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아프간 전문가도 한국에는 전무한 형편이다. 탈레반의 주축인 파슈툰족은 종족과 종교의 명예를 중시하고 그것이 더럽혀졌을 때는 반드시 복수하는 전통이 있다.

필자는 영국에 머물 때 케임브리지로 유학 온 파슈툰족 고등학생과 2년간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있다. 우리 가족이 하숙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6년간 버틸 때 얘기다. 그는 아버지가 독일에 병원까지 갖고 있는 성공한 이민자였고 자신이 독일에서 태어났는데도 라마단의 금식과 같은 전통을 철저히 지켰다. 어른스러우면서도 마음씨는 순박하기 짝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의 가문은 탈레반에 적대적이었으나,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자 ‘미국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확신했다. 당시 언론보도로는 탈레반이 괴멸된 상황이어서 그의 말을 흘려들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우리 파견부대의 전투력이 아무리 높아도 저항세력과 민간인이 구분되지 않는 전장에서 매복공격과 매설폭탄을 피하기란 어렵다. 너무 엄격한 계율을 요구해 지지를 잃어가던 탈레반을 소생시킨 것은 부패한 카르자이 정권이었고 미국의 무차별적 군사행동이었다. 오죽하면 3성 장군 출신의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도 군대 대신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을까. 분명한 사실은 외국군이 더 많이 투입되면 반군의 저항도, 외국군의 희생도 더 커진다는 점이다. 많은 나라들이 ‘출구전략’을 고민하는 판에 우리는 머리를 들이밀겠다는 건가?


»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넷째, 북한과 관련해서는 군사력과 전쟁 도발 가능성이 지나치게 과장보도된다는 점이다. 이번 서해교전 보도에서도 북한이 남한의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남한의 군비증강에는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게 우리 언론이다. 도대체 국내총생산 규모가 30배가 넘는 상황에서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하려 한다’는 건 현대전의 개념이 잘못 입력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섯째, 우리 언론이 안보담론에 매몰돼 평화담론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국가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군비증강은 안보를 약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북한의 핵개발도 점점 벌어지는 군사력 격차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반전·반핵·평화의 3원칙을 견지하면서, 군비경쟁에서 군비축소로, 한-미 군사동맹에서 다자 평화협정 체제로 전환하는 데 언론이 나서야 한다.

<한겨레>는 이런 여러 관점에서 얼마나 진지한 노력을 해왔는가? ‘진실은 전쟁의 첫 희생자’란 말이 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전쟁은 기자에 의해 목격돼야 한다. 전쟁의 진실이 밝혀지면 평화로 가는 길도 뚜렷해질 것이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제목아이콘이미지  댓글수 1
admin 기가트라이브   2009-11-27 11:58:23
진실은 전쟁의 첫 희생자라...

머릿속에 맴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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