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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한겨레] ‘잘나가는’ 신문에는 ‘사람 이야기’가 넘친다

  • 관리자
  • 조회 : 5951
  • 등록일 : 2009-12-31
[시민편집인의눈]
 
‘잘나가는’ 신문에는 ‘사람 이야기’가 넘친다 / 이봉수
 
‘<가디언>이 관 뚜껑 닫는다’…부음기사 두 면 명성
기득권층·재벌 홍보수단 안 되게 인물평 객관적으로
<한겨레>식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람면에서 구현을
한겨레
» kimyh@hani.co.kr



 

 

 

어느새 한 해의 끝.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뒤돌아보는 해마다 ‘다사다난’일까? 그러나 국내적으로 올해만큼 인물들의 부침이 심했던 해는 없었던 듯하다. 언론들이 ‘뜬 별, 진 별, 사라진 별’ 등으로 제목을 붙여 정리한 올해의 인물 속에는 ‘거성’들이 즐비하다. 서민들이라 하여 삶의 무게가 다를 수는 없을 터이니, 눈에 잘 띄지 않는 뭇별처럼 나름대로 한 해의 궤적을 뒤돌아보며 감상에 젖을 수도 있으리라.

신문의 출발부터 그랬지만, 사람 얘기는 독자의 흥미와 감동을 자아내는 원천이다. 오랜 기간 국내외 신문을 모니터링 하면서 발견한 ‘잘나가는’ 신문들의 특징은 사람 얘기를 계속 늘려왔다는 점이다. 외국의 권위지들은 특히 사람 얘기를 다루는 방식부터 개성을 드러낸다.

영국의 <가디언>은 2005년 베를리너판으로 전환하면서 사람 얘기와 인터뷰 기사 등을 크게 늘렸다. 심지어 죽은 사람의 인생을 정리해주는 부음기사를 매일 두 면에 걸쳐 싣는 모험을 했다. 얼마나 끌고 나갈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국내외 인물을 가리지 않고 <워낭소리>의 노부부처럼 평범한 사람의 인생도 의미를 부각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었던 이종욱씨를 비롯한 한국인도 여럿 부음기사로 다뤄졌다.

우리나라와 판이한 점은 죽은 사람의 공적은 물론이고 과오까지 가차없이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가디언> 부음기사의 객관성은 정평이 나 있어 ‘관 뚜껑을 <가디언>이 닫는다’는 얘기까지 있다. 누구나 죽음을 앞둔 처지이고 보면, <가디언>이 부음기사를 쓸 만한 공인이라면 살아생전에 언행을 경건하게 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죽은 이에 대해 좋게만 보도하는 우리 언론과 매우 다른 모습이다. 두 대통령 서거 당시 <한겨레> 보도 태도에도 ‘역사적 기록’이라는 차원에서 치우침은 없었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우리나라 신문에서 사람 소식을 전하는 면은 부음란을 빼고는 모두 경사스런 소식으로 채워진다. 연말에는 거의 미담기사와 희소식 일색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의 얘기나 출세를 해 ‘자랑스런 동문’으로 선정된 이를 비롯한 각종 수상자들이 ‘사람’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룹마다 대규모 임원 승진 인사가 발표되는 시기도 이때다.

합격자 뒤에는 사교육을 받지 못해 쓰라림을 맛본 불합격자가 더 많고, 승진 인사 뒤에는 평생을 바친 직장을 떠나야 하는 해고의 비애가 서려 있지만, 거기에 주목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대기업은 사기업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자산이 된 지 오래건만 재벌 총수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 불문하고 초고속 승진을 해도 그저 ‘추인’하는 게 오늘의 한국 언론이다. 젊은 2, 3세 승계로 이어지면서 선대의 공신들은 한창 경륜을 펼칠 나이에 밀려나는 이들도 많다. 나이를 잣대로 능력과 의욕을 폄하하는 풍토는 나이든 사람들을 더 무능하고 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이른바 ‘사회쇠약증후군’을 만연하게 한다.

연말의 경사스런 분위기에서도 최대의 행운을 누린 이는 ‘초저속 사법처리’에 ‘초고속 사면’을 받은 이건희 전 회장이다. 거액의 사회공헌기금을 낸데다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뛸 수 있도록 사면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거의 ‘만들어진 여론’이라는 사실은 삼성 쪽이 더 잘 알 것이다. 필자는 삼성이 이 전 회장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 수주작전’을 펼 때 돈·권력·명예가 집중될 경우 폐단을 지적한 적이 있지만(<한겨레> 1996년 7월3일), 이렇게까지 그 직위를 활용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이쯤에서 짚어보아야 할 것은 이 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또한 사람을 평가하고 사람 얘기를 보도하는 기준이 되겠기에 늘어놓는 말이다. 이 용어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사회적 의무를 다하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그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견해도 있다. 피지배자의 자발적 복종을 얻어내기 위해 지배자가 모범을 보이려는 것일 뿐, 결과적으로 신분질서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분질서는 일차적으로 가진 돈의 액수로 간명하게 형성된다. 사회공헌기금이나 성금을 내는 것은 갸륵한 일이지만 돈이 종종 법 위의 신분으로 행세하는 수단이 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실은 기업에 성금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다. 기업은 많이 고용하고 세금 많이 내면 최선의 사회공헌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권력과 돈을 가진 자 중 상당수가 ‘고귀한 자’의 의무를 실천하기는커녕 납세와 병역이라는 일반인으로서의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의 양식있는 부자들이 소득세를 올리자고 청원하는데, 우리 부자들은 불로소득에 해당하는 종부세조차 무력화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연말에 성금을 내는 행위는 어쩌면 ‘자기위안’일지도 모른다.

지난 16일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청 광장 앞에 잠시 차를 멈추고 자선냄비에 금일봉을 넣었다. 그러나 더불어 사는 사회가 국민의 ‘성금’으로 이룩되지는 않는다. 조세와 예산배분 등을 통한 제도적 접근만이 유효할 뿐이다. 성금은 사회심리적으로 면죄부 구실을 해 개혁의식을 마비시키는 측면이 있다.

학력이 높거나 출세한 사람일수록 병역기피율이 높은 것도 선진국치고는 우리만의 현실이다.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청와대다. 대통령과 총리가 병역을 마치지 않은 나라이다. 마오쩌둥은 아들이 한국전쟁에서 전사해 유해를 중국으로 송환하려 하자 ‘어디 한국전선에서 죽은 인민의 아들이 한둘인가”라며 한국 땅에 묻도록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와 클라크 대장의 아들을 비롯해 142명의 미국 장성 아들이 참전해 35명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한겨레>는 나름대로 소외된 사람들의 얘기를 전하려고 노력하지만, 보도자료라도 뿌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소식이 주로 지면을 장식하는 듯하다. <한국일보>의 ‘워킹 홈리스의 힘겨운 겨울나기’ 시리즈(22~24일)나 비주류 인물들의 도전 등을 다루는 ‘바깥’이라는 연재물은 ‘<한겨레>에 실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굳이 소외된 계층 얘기가 아니더라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는 당시 <한겨레>만 보도하지 않았다. 텔레비전 쇼가 발굴한 가수, 수전 보일의 얘기가 빠진 것도 독자들에게 허전하지 않았을까?

»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12월12일에는 신군부 쿠데타 30돌을 맞아 많은 신문들이 당시 주역들의 근황을 전해 관심을 끌었으나, <한겨레>는 관련기사가 없었다. 그날은 조영래 변호사의 기일이기도 했는데 <중앙일보>는 ‘진보·보수가 모두 사랑한 사람’이라며 그를 기렸다. 요즘 이명박 정권의 억압에 맞서는 지식인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고비마다 <한겨레>가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건 어떨까?

지면마다 사람 얘기를 많이 등장시키는 신문은 <조선>과 <중앙>이다. 조선의 주말특집 ‘Why’는 거의 사람 얘기로 채워지고, <중앙>은 2면에 ‘기사 속 인물’을 10명 가까이 열거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한겨레> ‘사람’면에 <연합뉴스> 기사가 너무 많이 실리는 현상은 각 취재부서가 ‘사람’ 얘기에 신경을 크게 쓰지 않는 증거로 포착된다. 평소보다 심하긴 했지만, 26일치 ‘사람’면은 기사 작성자가 명시된 기사 8건 중 5건, 28일치도 7건 중 5건이 <연합뉴스>였다.

‘사람’면은 한국 사회의 축도이다. 새해에는 전 지면에 걸쳐 사람 얘기가 넘쳐나기를 기대해본다. <한겨레>식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위하여!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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