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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한겨레]분산되지 않은 권력은 민중에게 반역한다

  • 관리자
  • 조회 : 5504
  • 등록일 : 2010-03-25
 
[시민편집인의눈] 분산되지 않은 권력은 민중에게 반역한다
한겨레

 

 

 

 

 

고위관료 권력남용과 구설은 대통령이 원인제공
적과 동지 대립사회, "사회적 법치"로 약자 배려를
권력분산 등 헌법개정,<한겨레>가 치고나갔으면

영국 해군(Royal Navy), 공군, 해병대 앞에는 ‘국왕의 군대’임을 뜻하는 ‘로열’이라는 경칭이 붙는데, 육군만 예외다. 이는 육군이 ‘의회의 군대’라는 역사에서 유래한다. 왕실이 보기에 육군은 크롬웰의 지휘로 왕당파를 무찌르고 찰스1세를 처형한 ‘반역의 군대’였다. 크롬웰도 독재를 하다가 왕정복고 뒤 부관참시되지만 1689년 권리장전은 의회가 평화시에도 상비육군을 둘 수 있게 했다.

19세기 말 논란 끝에 크롬웰의 동상이 의회 앞에 세워지는데, ‘의회의 수호자’로서 칼을 차고 버킹엄궁 쪽을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당당하다. 지금쯤은 육군에도 ‘로열’이라는 경칭을 붙여줄 만한데, 그것도 전통이라고 고치지 않는 영국인들 발상이 재미있다.

그런데 흥미로만 여길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사’를 써온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다. 그들은 왕을 처형하는 피의 대가를 치르면서 권력집중을 막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요체임을 깨닫고 권력을 분산하는 제도와 관습을 정착시켜왔다.

사실 우리 현대사의 굴곡들도 대부분 권력집중에서 비롯했다. 4·19, 5·16, 10·26, 12·12, 5·18, 6·10 … 모두가 권력집중과 그에 맞선 항쟁 또는 권력쟁탈의 와중에 발생한 것이다. 요즘 매일같이 권력기관과 정권 실세들이 구설에 오르는 것 역시 단순한 말실수나 설화로 볼 일이 아니다. 권력집중이 가져온 집권층의 오만과 비민주성이 실체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분리되어 있어야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구와 단체를 정권 실세들은 수시로 손보겠다고 나선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좌파 성향 판사가 사법부의 핵심 개혁 대상”이고 “(좌파이념)교육에 의해 아동 성폭력 범죄까지 생겨나고 있다”더니 “강남의 부자 절에 좌파 주지를 그냥 둘 거냐”고 일갈했다. 사법·교육·종교는 각별히 정치와 분리돼야 하는 영역이건만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간섭과 척결의 대상일 뿐이다. 집권당의 원내대표가 국민을 아우르는 게 아니라 좌파로 몰아 솎아낼 생각만 한다.

방송장악 음모를 들키고 만 김우룡씨의 고백은 솔직해 보이기나 하지만,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현모양처나 되라’는 발언은 그의 봉건적 여성관이 표출된 듯하고, ‘회피 연아 동영상’에 발끈한 유인촌 장관의 고소는 문화부 장관이 청소년들의 인터넷문화를 이리도 이해 못하나 싶어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말대로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비는’ 꼴이고,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 정부 요직을 상당수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언론들은 일련의 보도를 통해 권력에 도취한 집권층의 행태를 비교적 소상히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말과 행태가 만연한 정치환경을 분석하고 나아가 제도와 관습을 바꾸는 데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관료들의 행태를 꾸짖는 사람으로 부각되고 있으나, 실은 대통령이야말로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은 대체로 간과되고 있다. 한나라당 지지도와 달리 대통령 지지도가 고공행진을 하는 데는 그런 요인도 작용하는 듯하다. 한 예로 <중앙일보> 22일치와 <한겨레> 23일치를 보면, 지난 16일 대통령은 이동관 홍보수석을 호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통령 발언을 뜯어보면 그가 정치적 반대세력을 대하는 태도가 그의 참모들에게 그대로 전이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강요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천주교 주교회의 성명에 대해 “왜 4대강 사업이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사업임을 설명하지 못하느냐”고 질책했는데, 반대 이유를 타당성 결여가 아니라 상대방의 이해 부족에서 찾고 있다. 반대편 의견을 수렴하는 게 아니라 이해시키겠다는 태도에는 그 스스로 ‘선지자’ 또는 ‘전지자’인데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이 배어난다.

야당의 무상급식 주장은 포퓰리즘으로 단정짓고 무상보육 등 다른 데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승자와 패자만 있는 기업의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탓인지 지고는 못 배기는 기질이 드러난다. 4대강 사업에는 반대하는 국민이 많고 무상급식에는 찬성하는 국민이 많다. 대통령이 국민한테 지는 것은 지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인데도 승부근성을 발휘한다.

실은 구설에 오른 참모들도 모두 그가 발탁해 쓴 인물이 아니던가? 이 대통령 집권 전까지만 해도 허튼소리를 하는 극우집단 정도로 치부되던 ‘뉴라이트’ 그룹에서 많은 이들을 중용한 것도 그였다. <신동아> 2008년 9월호에 따르면, 2004년에 ‘뉴라이트’라는 명칭을 만든 이들이 바로 이동관 <동아일보> 정치부장과 자유주의연대 신지호씨 등이었고, 결국 정치·이념시장의 최고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오늘의 모순은 자유주의 운동세력임을 자처하는 뉴라이트들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 사법부와 언론의 독립, 정교분리 등 헌법적 가치들을 앞장서서 허물고 있는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사회를 이념과잉의 분위기로 몰아넣고 ‘적’을 적출함으로써 생존공간을 확보했던 1920년대 독일과 1950년대 미국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20년대 말 독일 헌법학자 헤르만 헬러는 적과 동지로 대립하는 사회가 어떻게 각 영역의 자유와 자율을 보장하면서 정치적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상대적 동질성’을 강조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법치주의’ 개념을 제시했다.

<한겨레>는 이쯤에서 사실보도에만 힘쓸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헌법의 기본권 보장이나 권한 행사의 정당성과 관련된 조항들을 제대로 해석하고, 헌법과 관련 법규가 실제 적용 상황과 어떻게 다른지 짚어보는 기획물을 집중적으로 내보내는 것은 어떨까? 국민에게만 법질서를 강요할 게 아니라 국가권력도 법을 지켜야 법치가 완성된다. 또 민주적 의결방식을 다수결로만 이해하여 언필칭 ‘민주적 절차’에 의한 민주주의 파괴를 막는 일도 포함될 수 있으리라. 헌법에 규정된 환경권과 행복추구권 등은 사문화 정도가 아니라 4대강 사업과 복지정책 후퇴 등으로 사실상 헌법 위반 상태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현실에 맞지 않는 헌법 조항들은 전향적으로 개정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한겨레>는 한나라당의 개헌 논의를 정략적으로 보고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제대로 된 개정안을 제시하는 일이야말로 집권당에 유리한 권력구조 중심의 잦은 헌법 개정을 막는 방패가 되지 않을까? <조선일보>가 보수적 의제설정에서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종종 타당성보다 미리 치고 나오는 데 있다고 본다.

제왕적 대통령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라면 국무총리에게 실질적인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주고, 대통령의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임명권을 삭제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내각제도 검토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선거 전후를 막론한 이념·지역 대립과 인사전횡을 막기 위해서라면 독일식 합의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 필요도 있으리라.

국가권력만이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이 아니라 경제권력과 언론권력이 국가권력을 능가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경제권력을 민주적 통제 안에 두기 위해, 그리고 언론권력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헌법과 관련 법규의 재정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분산되고 견제되지 않은 권력은 민중에게 반역한다는 점에서 <한겨레>가 권력분산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일은 빠를수록 좋으리라. 무한권력은 궤도를 이탈할 수밖에 없고 대통령의 비극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권력분산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서도 축복이 되리라.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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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45016;   2010-03-26 09:43:20
권력을 과잉으로 행사함으로써 빚어지는 현정권의 실패 요소들을 해박한 서구 정치사와 정치철학에 근거하여 날카롭게 지적하시면서, 권력분산의 절실함을 역설하신 봉샘의 글 잘 읽었습니다. 헌법 개정에 대한 선제적 논의가 자칫 정치쟁점의 전환을 가져와 여론 주도권을 계속 현정권에 안겨주는 부분에 대한 대처 방안을 좀더 설명해 주셨으면 더욱 마음이 시원해졌을 듯 합니다. 현 집권세력이 사회적 정치적 정책적 이슈를 양산하면서 야당이나 반대세력이 여론 시장에서 거의 밀려나 있는 오늘의 현실도 다음에 한번 시원하게 분석해 주신다면 우리 독자들에게 큰 공부가 될 듯 합니다. 물론 언론 영역, 특히 방송이 권력에 의해 재편된 최근의 상황이 큰 원인이 되겠지만 야당의 전략 전술의 부재와 부실도 크게 보이는 요즘입니다. 기대해도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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