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은행가 펠릭스 로하틴이 20년 전에 한 얘기다. 지난 20여 년간 남미와 아시아를 거쳐 미국과 유럽까지 강타한 금융위기가 얼마나 많은 민생을 도탄에 빠트렸는지 돌아보면 그의 경고가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위기는 이 순간도 진행형이다. 지난 21일부터 국제통화기금(IMF) 등과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고 있는 그리스의 사례는 재정 파탄이 유럽연합(EU) 국가들로 전염될 가능성과 함께 또 다른 글로벌 위기의 재발을 걱정하게 한다.
그야말로 "금융 세계화"의 시대다. 보통 사람들은 그 구조를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파생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이를 전 세계에 시차 없이 퍼뜨리고 있다. 미국 부동산시장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이 땅의 펀드투자자들과 기업과 가계를 공포에 질리게 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계 금융시장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없으면 이런 위기는 더 짧은 주기로, 더 강력한 파괴력으로 세계를 강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의미에서 2008년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엄청난 비극이면서 한편으로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남미, 아시아 등 신흥 국가들의 위기에 "나 몰라라" 했던 선진국들이 자기네 심장부를 강타 당하면서 "반짝"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자본을 상징하는 "월스트리트"가 부시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아래서 자유방임에 가까운 규제 완화를 이끌어 낸 것이 위기의 온상을 만들었다는 반성이 터져 나왔다. 버나드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와 리만 브라더스의 회계조작 등 기막힌 부조리를 방치했던 당국의 태만에 비판이 쏟아졌다. 투기적 거래를 통해 금융시장 붕괴의 위험을 키워 온 투자은행과 헤지펀드에 대한 견제가 강화되어야 하며, 단기 실적에 연연케 하는 금융사의 보너스 체계를 수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은 반성과 변화의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
미국 정부가 막대한 구제금융을 쏟아부어 다 망해가던 대형금융사들을 살려내자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으로 돌아갔다.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자 위기의 매개체인 고위험도의 파생상품을 또다시 만들어내 거래하고, 수익이 나자 엄청난 규모의 보너스 잔치를 벌여 납세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투기적 거래를 제한하기 위해 규제강화안을 만들려는 오바마 정부의 시도를 온갖 정치적 연줄과 로비를 동원해 무력화시키려 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사기 혐의로 제소한 것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인류가 "원자탄보다 무서운 금융파국의 위협"으로부터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느냐를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폴슨앤코" 라는 헤지펀드와 짜고 서브프라임 관련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만들어 판 뒤 자기네는 막대한 이익과 수수료를 챙기고 고객들에게는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주택가격이 떨어질 때 돈을 버는 쪽으로 상품을 설계한 뒤, 고객들에게는 집값이 올라 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면서 이를 팔았다는 얘기다. 글로벌금융위기 와중에도 엄청난 돈을 벌었던 폴슨앤코와 골드만삭스의 "실력"이 사실은 사기였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드러난 혐의가 월스트리트 전체로 볼 때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그동안 "금융자본에 장악돼 단호한 조치를 못한다"는 의심을 받아왔던 미국 정부가 "월가 1등"인 골드만삭스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은 납세자들의 분노를 에너지 삼아 금융개혁안을 제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당국이 "검은 거래 관행"을 파헤쳐 금융개혁의 교두보를 확보할 것인지, 아니면 골드만삭스의 초특급 변호사들에 밀리고 말 것인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밀리면 "금융의 원자폭탄"이 우리 머리 위에도 더 쌓이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강 건너 불"로만 볼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