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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한겨레]진보신문에 부족한 것은 "오피니언+비주얼"
- 관리자
- 조회 : 5968
- 등록일 : 2010-05-26
[시민편집인의눈] 진보신문에 부족한 것은 ‘오피니언 + 비주얼’ | |
사진·그래픽·일러스트는 의견저널리즘 구사 수단 지면개편, ‘프리미엄 미디어’ 변신 토대로 삼아야 | |
내가 보기엔 미국 의료보험 개혁의 주역은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이다. 미국에서 무어가 <화씨 9/11>로 반전여론을 일으키고,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자유로운 총기 소지를 풍자하고, <식코>로 의료보험 문제를 이슈화하지 않았더라면 오바마는 대통령이 되기도 어려웠으리라. 비정상적인 미국 사회의 모습들을 다른 나라와 극적으로 대비시켜 소수 지식인층에 머물던 진보담론을 대중의 열망으로 바꿔놓았다. <식코>는 미국 의료보험제도가 캐나다·영국·프랑스 같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미국인들이 증오하는 카스트로의 쿠바보다 훨씬 열악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미국에도 이런 이슈들을 줄기차게 제기해온 진보진영 연구소와 종이매체는 꽤 많았으나, 미국 사회를 바꿀 만큼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단순히 발행부수로 영향력을 말하는 것은 무리지만, 미국의 대표적 진보잡지인 <먼슬리 리뷰>는 고작 수천부를 찍어낸다. 그런데 <식코>는 미국에서 수천만명이 관람했으니 영상을 통해 만 배의 사람들을 감동시킨 셈이다. 이 대목에서 유의할 만한 것은 세계 유수의 진보신문들도 ‘오피니언+비주얼’, 곧 의견과 시각적 요소의 결합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디언>을 필두로 <르 몽드>, <라 스탐파>(스페인), <라 레푸블리카>(이탈리아) 등은 모두 베를리너판으로 판형을 바꾸면서 오피니언면을 강화하고 시각적 요소를 대거 도입했다.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진보담론들을 재미있고 설득력있게 전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한겨레>가 창간 22돌을 계기로 오피니언면을 강화하고 온라인 사이트인 <훅>을 창설해 여론 형성 과정에서 독자와 교감하기로 한 것은, 이 난을 통해서도 몇 번 제안한 적이 있어 더욱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더 획기적으로 변신해 오피니언면을 하루 2~3개에서 3~4개로 늘리고 ‘오피니언+비주얼’이라는 세계 진보신문의 조류를 탈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오피니언면 확대는 온라인과 모바일 등이 ‘매스미디어’ 구실을 대신하면서 신문은 ‘프리미엄 미디어’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세계신문협회 총회에서 ‘인터내셔널 미디어컨설팅그룹’ 후안 세뇨르 부사장은 ‘뉴스 대 분석’의 비율을 ‘8 대 2’에서 ‘2 대 8’로 바꾸고 신문에 잡지의 장점을 더한 ‘뉴스진’(Newszine) 형태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사진을 구색 맞추기로 옹색하게 쓰는 때가 자주 있다. 이슈 싸움에 강한 <인디펜던트>와 <리베라시옹>은 판형이 작긴 하지만 아예 1면 가득 사진이나 그래픽을 실어 한 가지 이슈만 부각시키는 편집으로 유명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신문 독자들이 기사에는 평균 12%만 주목하지만, 1단 사진에는 42%, 4단 사진에는 70%가 주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잘나가는 신문의 1면에는 기사를 보조하는 데 그치는 사진보다는 강렬한 이미지를 주는 독자적인 사진, 감성에 호소하거나 휴머니즘이 넘치는, 그야말로 ‘이 한 장의 사진’이 많이 배치된다. 그런 사진을 날마다 찍기는 어렵겠지만, 외국 신문은 물론이고 국내 다른 신문에도 실린 좋은 외신사진마저 자주 빠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난해 4월21일치 <조선일보>는 국내 통신사인 <뉴시스>가 송고한 벚꽃 지는 사진을 1면 머리에 4단 크기로 쓰고, ‘꽃은 진다… 청춘이 그러하듯이’라는 감성적인 제목을 달았다. 자사 기자가 애써 찍어온 사진이라 하여 우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넥타이밖에 달라진 게 없는데도 매일 봐야 하는 정치인들 사진, 승리팀의 환호나 슛 장면 등 승리에 집착하는 스포츠사진에는 승자의 기쁨은 있어도 독자의 감동은 없다. 비주얼 시대에 적합한 지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 취재부서도 기사 기획 단계부터 시각적 요소를 염두에 둬야 한다. 사진을 적게 쓰기로 유명했던 <르 몽드>가 문화면을 컬러면에 배치하고, 특히 디자인·건축·패션 기사를 많이 내보내는 것도 색감을 살리기 위한 변신이다. <인디펜던트>는 종종 두 장면의 사진을 1면에 대비시켜 강력하게 이슈를 제기한다. 전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는 ‘토건국가 행진’을 저지하는 데도 사진과 그래픽이 기사보다 더 큰 힘을 쓸 수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사라져가는 모래톱과 여울과 둔덕의 숲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들을 기록해두는 것은 비주얼 시대 인쇄매체의 임무였을 터이다. 지율 스님이라도 몇 장 찍어둔 게 있어 공사 전후를 비교할 수 있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래픽과 일러스트는 신문 제작자의 의도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견저널리즘을 구사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자칫 딱딱해서 외면하기 쉬운 오피니언면을 읽게 만드는 유인책이 된다. 의견저널리즘의 전통이 강한 유럽 신문들은 특히 4~5쪽에 이르는 오피니언면마다 그래픽이나 일러스트를 크게 그려 넣는다. 한국 신문처럼 필자의 얼굴사진들만 들어가는 오피니언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고정관념과 관행이 벽처럼 느껴질 때 그 조직은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다. 드골은 <르 몽드> 창간호에 “무기력한 것, 그것은 지는 것”이라고 썼다. <한겨레>도 모처럼 시행한 지면개편이 ‘변화의 일단락’이 아니라 거기서 동력을 얻어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고대한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