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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MBC매거진]살얼음판 세계 경제

  • 관리자
  • 조회 : 5843
  • 등록일 : 2010-05-31

MBC매거진 2010년 6월호


[살얼음판 세계 경제]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메릴 스트립이 열연한 영화 ‘맘마미아’에서 쪽빛 바다와 그림 같은 섬의 풍광으로 이방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리스. 이 나라가 요즘은 지구촌 사람들의 혈압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심하게 눈총을 받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이제 좀 벗어나나 하는 시점에 그리스의 재정위기로 촉발된 금융불안이 유럽을 넘어 세계 증시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화를 쓰는 16개 나라 중에서 작고 가난한 편에 속하는 그리스는 복지예산 등 정부 지출은 많은데 부자들의 탈세로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해 나라 살림 꼴이 말이 아니다.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3%를 넘고 나라 빚의 절대 규모는 GDP의 130%나 된다. 유럽연합이 정한 관리기준이 각각 3%와 60%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심각한 적자살림인지 알 수 있다.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무려 1100억 유로(약 156조원)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투입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운명은 안개속이다.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았으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갚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데, 공공노조 등이 파업과 폭동까지 벌이며 저항하고 있다. 빚 많은 나라에 더 많은 돈을 빌려줘서 불을 끄려는 접근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만일 그리스가 끝내 부도로 가게 되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재정적자가 심각한 다른 남유럽국가들은 물론 그리스 국채를 잔뜩 끌어안고 있는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선진국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래서 유럽연합 27개국이 무려 1조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기금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잘못 처리될 경우 유럽이 50년 이상 공들여 만들어낸 유로존, 단일통화지역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해외에서 이런 금융 불안이 나타날 때 마다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것이 우리 증시와 외환시장이라는 것이다. 경제규모에 비해 금융시장이 너무 개방돼 있어서, 선진국 금융회사 등 외국자본의 동향에 과도하게 출렁인다.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때는 물론, 이후 동유럽 위기, 두바이 위기 등 악재가 부각될 때 마다 증시는 추락하고 환율은 널뛰기를 했다.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우리의 산업구조 역시 선진국 경기가 얼어붙으면 누구보다 먼저 타격을 받는 취약성을 드러냈다. 최근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고 있다고 좋아들 했지만, 외부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한방에 훅 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 세계 경제는 곳간을 풀어서 금융위기를 벗어났던 각국 정부가 막대한 나라 빚 때문에 곤경에 처한 형편이어서 과연 어떤 해결책이 남아있는 지도 막막하다. 전문가들 중에는 남유럽 사태가 쉽게 해결되지 못한 채 상당기간 세계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얼음판을 밟듯,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늘 바깥 눈치를 살펴야 할 지 모른다.

복잡하게 얽힌 세계 경제에서 해외변수의 영향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우리처럼 금융과 실물 모두 지나치게 대외의존성이 큰 경우는 곤란하다. 더 이상 이런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 은행들의 단기외화차입을 제한하는 등 금융시장에 적절한 제동장치를 마련하고, 수출대기업에 치우친 산업지원정책을 내수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등 우리 경제의 자기 통제력을 높이는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살얼음판이 와장창 깨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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