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고 후 한동안 중년의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이런 얘기가 화제의 중심이 됐다. 수 십 명의 장병이 생때같은 목숨을 잃은 뒤 군에 자식을 보냈거나 보낼 예정인 부모들은 "불안지수 급상승"을 경험했다. 게다가 정치권과 언론의 매파들은 "전쟁을 불사하고 북을 응징하자"며 "선동질"에 나섰다. 대통령까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입에 올렸다. 전쟁이 비디오 게임인 줄 아나? 내 자식이 제일 먼저 "포탄받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은 걱정과 분노로 밤새 뒤척였다.
남북 당국의 움직임은 이런 근심에 기름을 끼얹었다. 우리 정부는 개성 공단을 제외한 대북교역 전면 중단을 선언했고, 중단했던 휴전선에서의 대북 심리전 방송과 "삐라" 살포 재개도 예고했다. 북한은 이에 맞서 아예 "전쟁상태"를 선포했다. 남북 간의 통신을 끊고 대북 심리전이 시작되면 방송시설에 조준사격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렇게 주고받다가 급기야 큰일이 터지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타임 등 일부 외신은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그려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전쟁의 위협이 커졌다고 생각하나"를 묻는 한 국내신문사의 인터넷 설문 조사에서는 7일 현재 1만4000여 명의 응답자 중 약 58%가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남북 대치는 심리적 불안뿐 아니라 경제적 피해도 키우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 즉 언제든 무력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는 위험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주가는 고꾸라지고 환율은 널뛰기를 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선진국 우대금리에 얹어줘야 하는 가산금리도 올라갔다. 북에서 수산물, 모래, 석탄 등을 수입하던 중소업체들과 속초항, 인천 등의 지역기업들은 교역중단 조치로 날벼락을 맞았다. 개성공단에 투자한 120여 개 업체들도 언제 공단 폐쇄와 같은 극단적 조치가 내려질지 몰라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납품 불안을 이유로 주문이 취소되는 바람에 생산량을 줄이고 현지 인력의 일부를 휴직시킨 회사도 있다고 한다.
경제뿐인가. 6·2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른바 "북풍"이 일면서 토론의 쟁점이 돼야 할 지역 살림과 교육 문제 등이 밀려버린 것 등 민주주의의 손실도 적지 않았다.
이제 선거가 끝났고 "북풍"도 잦아드는 모습이다. 특히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정상회담을 위해 한반도 정세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대북 관계 개선에 나서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불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역사를 돌아볼 때 아주 우발적인 사건 하나가 전면전을 촉발한 일이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강력 응징"을 다짐한 남이나 "전쟁 상태"를 선포한 북쪽 모두에 물불 안 가리는 강경파들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꼬투리가 되어 통제불가 상황으로 치달을지 알 수 없다. 어떻게든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경거망동을 삼가야 하며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북의 도발에 대한 응징은 국제합동조사를 통해 우리 측 결론이 근거 있는 것임을 명확히 한 후 외교적 공조를 통해 추진해야 한다. 남쪽 땅 심장부가 북의 장거리포 사정권에 있는 현실에서 전쟁은 "너 죽고 나 죽는" 무모한 선택일 뿐임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또 하나, 전쟁 엄포를 놓으면서도 북측이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못하는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쪽과의 협력을 통해 북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면 클수록, 무력 충돌의 가능성은 낮아진다. 우리는 어떤가. 평화적 경협을 이어갈 수 있다면 지금 중국이 다 퍼가고 있는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값싼 노동력 등을 활용하면서 중국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닿는 내륙수송로를 통해 단숨에 시장을 키울 수 있다. "북한 리스크"가 사라지면 국가신용등급도 올라가고 자금조달 금리도 낮아진다. "평화"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이익이 되는 것이다. "경제"와 "실용주의"를 앞세운 현 정부가 집권 첫날부터 이를 무시하고 거꾸로 달려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안타깝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