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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우와기, 가다마이, 또는 수트
- 아침수찬
- 조회 : 559
- 등록일 : 2024-12-02
1970-80년대에 미성년기를 보낸 나는 '가다마이'를 동경했습니다. 그런 옷을 입는다는 건, 상류층 모범생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또래들은 가다마이를 줄여 '마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와, 마이 입고 왔네"라는 말은 '너의 재력과 성적이 부럽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학생을 보고 학교 선생님들은 "우와기 좋네"라며 촌스런 단어를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제 잔재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우와기는 촌스럽고 가다마이는 세련된 말이라고 그 시절의 10대들은 생각했습니다.
일제 시절, 서양식 복장을 일컫는 일본말이 한반도에 퍼져, 20세기 말까지 흔히 쓰였던 것임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가다마이와 우와기의 차이도 나중에 이해했습니다. 우와기는 자켓 형식의 겉옷이고, 가다마이는 위아래를 갖춰 입은 싱글 정장입니다. 그래도 나의 세대는 둘을 구분하지 않고, 잘 차려입은 남자의 복장을 통칭하여 '(가다)마이'라고 불렀습니다.
최원석 덕분에 나는 지난 1년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종종 옛날로 돌아갔습니다. 예비언론인캠프에서 처음 만났는데, 상류층 모범생을 30여 년 만에 목격한 것 같았습니다. 상류층이 아니라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지만, 여하튼 독특한 세계관의 소유자임을 세저리 사람들 모두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아침마다 가다마이를 입고 단비서재에서 종이신문을 읽는 모습을 봤는데, 90년대 말의 언론사 사회부장이 낙종한 기사를 챙기는 모습과 아주 똑같았습니다. 40-50대 신문기자들이 무척 좋아할 차림새였습니다.
짐작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2학기 차의 막바지, 최원석이 매일경제에 입사했습니다. 아직 배워야할 것이 많은데, '가다마이 입는 MZ'를 선배 기자들이 놓치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어쩔 수 없이 보내주긴 해야겠는데, 그래도 꼭 일러두고 싶은 이야기를 여기에 적습니다.
우와기 또는 가다마이라는 일본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뉘앙스가 수트(suit)라는 영어 단어에 있습니다. 수트의 어원을 보면, '모든 요소를 함께 갖추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스위트룸의 suite와도 같은 어원입니다. 침실, 화장실, 욕실, 거실을 모두 갖춰야 스위트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수트'를 입는다는 건, (싱글이건 더블이건) 상의, 하의, 셔츠, 벨트, 타이, 양말, 구두 (그리고 베스트, 커프스, 넥타이 핀, 손수건 등)를 모두 갖추는 일입니다.
그동안 최원석은 서양식 자켓을 걸친 '우와기'를 주로 입었습니다. 상의와 하의의 구색을 갖추는 '가다마이'를 드물게 입었지만, 셔츠나 구두를 맞춤하여 입진 않았습니다. 또래들 사이에선 우와기만으로도 두드러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수트 입는 법을 알아야 할 겁니다. 그걸 어찌 입는 것인지, 매일경제에 가서 잘 배우길 바랍니다.
한가지 더. 수트가 잘 어울리는 사람은 캐주얼도 잘 차려 입습니다. 수트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요소의 조합을 이해하는 사람은 상대를 편하게 만드는 여러 요소의 조합도 잘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도 프로페셔널한 기자들에게 더 배우길 바랍니다.
우와기 또는 가다마이 입고 종이 신문을 즐겨 읽던 최원석이 여러분에게 전하는 글을 아래에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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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기 최원석입니다. 매일경제 수습기자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천에 처음 온 지난 1월, 눈이 엄청 내렸습니다. 세저리 면접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눈 내린 의림지를 1시간 동안 산책했습니다. 그날 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플랜B는 없다. 기자가 되자.”
저는 공돌이입니다. 고등학교와 학부 시절, 진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냥 회사원이 되기는 싫었습니다. 연구원은 괜찮았습니다만, 연구원이 되기에는 세상사에 관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뭘 할지, 무엇이 멋있는지 고민하다가 기자를 생각했습니다. 기자를 만나본 적도 없고, 기자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멋있어 보였고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설명: 캐주얼하게 입은 세저리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최원석(오른쪽 아래). 이날 입은 가다마이를 숨기려고, 일부러 얼굴만 촬영 프레임에 끼워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 여름, 세저리 예비언론인 캠프에 왔습니다. 제정임, 심석태, 안수찬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살면서 처음 보는 기자들이었고, 그들이 신기했습니다. 캠프에서 저는 안수찬 교수님 분반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학생들의 질문에 하나씩 답해주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기자 준비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말도 했던 것 같습니다. “기자를 할지 고민 중이다. 나는 그저그런 기자가 될까봐 두렵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원석 씨는 왜 인텔리를 좋아하죠? 기자는 인텔리 직업이 아닙니다. 그냥 블루칼라 노동자에요. 먼지 바람 마시고, 바닥에서 뒹굴어야 합니다.” 이것 말고도 뭔가 되게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크한 말씀을 듣고 저는 세저리에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만약 그때 “세저리에 오면 좋은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안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쌤 특유의 말투로 약간 혼내듯 말씀하시니, “세저리에서는 제대로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설명: 제정임 원장님과 함께 (아마도 환경부) 야유회를 가는 날에도 그는 가다마이를 입었다. 다만, 캐주얼한 복장의 원장님을 의식하여 자켓을 벗는 센스를 발휘하였다.
그리고 저는 세저리에서 제대로 배웠습니다. 기자가 뭔지 배웠고,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어떻게 일하는지도 배웠습니다.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배웠습니다. 저는 겁이 많은 편이라, 뭔가를 할 때 돌다리를 많이 두드려봅니다. 세저리는 아주 훌륭한 돌다리입니다. 세저리에서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는지, 할 수 있는지 가늠했습니다.
배운 내용들은 전형 과정에서도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제가 언론사 전형을 많이 치러보지는 않았습니다만, 거의 적중률 100%입니다. 제정임 교수님 수업 때 다뤘던 주제가 논제로 나옵니다. (타사의) 인턴 과정에서는 스트레이트와 리포트 쓰는 과제가 많이 있었는데, 심석태 교수님 수업 때 연습한 덕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잘 쓴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안수찬 교수님 수업 때 배운 발제와 취재방법, 저널리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자소서, 인턴, 면접 때 모두 잘 썼습니다. 안수찬 교수님은 걸어다니는 명언 사전이니까, 말씀을 잘 듣고 기록해놓으면 언젠가는 크게 도움이 됩니다.
저는 지금 너무 분합니다. 졸업 전에 단비언론상 받는 게 목표였는데... 단비언론상도 못 받고 이렇게 학교를 떠나다니. 제가 지원해서 합격한 것이기는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학교를 빨리 떠나게 됐습니다.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정든 사람들과 작별하는 것도 아쉽고, 아직 못 배운 것도 많고, 발제만 해놓고 못 쓴 기사도 있습니다.
사진설명: 그는 여러 수업 또는 회의에서 당연히 가다마이를 입었다. 다만, 날이 더우면 겉옷을 벗고 셔츠 차림으로 수업 또는 회의에 임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발제한 아이템은 언젠가 다시 쓸 거고, 여러분은 언젠가 취재 현장에서 다시 만날 테니까. 저는 여러분을 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여러분이 좋은 발제를 하고, 좋은 기사를 쓰고, 이따시를 받고, 단비언론상을 받고, 저널리즘글쓰기 수업 때 글을 잘 쓰고... 그 모든 순간에 저는 구석에서 여러분을 질투했습니다. 나는 왜 저렇게 못하는가, 라고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그 질투심이 어쩌면 저의 합격 비결이 아닐까요.
제가 학교를 떠나던 지난 수요일, 제천에는 눈이 엄청 내렸습니다. 제천에서의 첫 날과 마지막 날에 모두 눈이 내렸는데 그새 저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제천의 사계절을 모두 보고 가서 다행입니다. 일 년 동안 참 즐거웠습니다. 세저리는 저의 자부심입니다. 세저리에서 배운대로, 좋은 기자가 되겠습니다. 조만간 현장에서 봐요.
P.S. 단비서재 NPC로서 단비서재를 비울 생각하니 슬픕니다. 단비서재 많이 애용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