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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길을 비켜라, 헐크가 나가신다

  • 박진영
  • 조회 : 4769
  • 등록일 : 2017-04-15
길을 비켜라, 헐크가 나가신다
[글케치북] 촛불집회, 산수유, 광화문, 지하철역, 전쟁
2017년 04월 14일 (금) 18:10:51 안윤석 PD  eunomiadike3@gmail.com
   
▲ 안윤석 PD

“남자에게 참 좋은데 말할 방법이 없네?” 망할. “야근하기 싫은데 말할 방법이 없네”다. 밤 11시다. 토요일, 내가 일하는 승리마트는 6시에 문을 닫았다. 촛불집회가 있어서다. 과일파트 주임도, 정육파트 막내도 초를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갔다. 저마다 광장의 캡틴아메리카로, 토르로,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해 거대한 세력과 싸울 테지. 그런데 어벤져스에서 빠져선 안 될 헐크는 어디 있냐고? 헐크는 지금 음료 코너에서 산수유 팩을 정리하는 중이다. 낮에 헐크로 변신한 죄책감에 대한 반성이랄까. 오늘 후임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화를 냈다. 후임의 눈물마저 보았다. 야근까지 시킬 순 없었다. 야밤에 내가 산수유 팩을 정리하고 있는 이유다.

광장에서 벌어지는 영웅들의 싸움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다. 눈길을 줄 틈이 없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게다. 지금 나에겐 승리마트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2년이란 비정규직 계약이 끝나간다. 후임이 잘못해도 내가 잘못한 것 같이 찔리는 요즘이다. 점장님에게 미운털이 박히는 순간 끝이다. 언제 길바닥에 나앉을지 모른다. 지금 당장은 산수유 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각종 음료수들을 제대로 정리해 누가 봐도 깔끔하게 보이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특히 손님들보다 점장님의 눈을 사로잡아야 한다. 재계약에 성공하는 것, 그것만이 오로지 비정규직인 내겐 이기는 길이다. 이제 산수유 2박스만 정리하면 된다. 망할 놈의 산수유. 하나 까먹어 버릴까 보다.

제목아이콘이미지  댓글수 1개
admin 박진영   2017-04-15 01: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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